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대 유니콘스/역사 (문단 편집) ==== [[현대 유니콘스/2001년|2001년]] ==== 2001년 시즌 전부터 투수진에서 이탈이 발생했다. 철벽계투 [[조웅천]]+[[조규제]][* 98년 이적 후 2년 동안 선발로 뛰었지만 2000년에는 목 부상 탓인지 9경기(중간계투 위주) 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2년차 신예 [[마일영]]이 그 해 조규제의 공백을 메꿔줬다.]는 신생팀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15억원에 SK로 트레이드되어야했다. 또한 에이스 [[정민태]]가 해외 진출을 결심하면서 [[요미우리 자이언츠]]에 임대되었다. 야수진은 큰 문제가 없었는데, 팀의 주포인 외야수 [[심재학]]이 [[두산 베어스]]로 트레이드되었다. 트레이드 상대는 외야수 [[심정수]]인데, 시즌 중반 심정수가 '''안면 부상'''을 당하는 바람에 부상으로 빠지고 타선의 침체기가 있었다.[* 아이러니하게도 2002년~2004년의 심정수는 심재학보다 연간 더 좋은 성적을 올리며 활약하게 된다.] 그 외에도 돌핀스-유니콘스 출신의 백업 포수였던 [[장광호]]가 5천만원에 SK에서 현금 트레이드로 돌아왔다. 시즌 개막전에는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[[정명원]]과 백업 내야수 [[염경엽]][* 이후 매니저 등을 거치면서 2012년 가을 [[넥센 히어로즈]]의 감독을 2016년 시즌까지 했다.]의 은퇴식이 [[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|수원 야구장]]에서 열렸다. 또한 시즌 초반에는 계투진에 자리가 없던 [[최영필]]+[[김홍집(야구)|김홍집]]이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면서 선발감으로 쓰기 위해 좌완 [[이상열(야구)|이상열]]을 한화에서 영입하게 된다.[* 역대 유니콘스 좌완 투수들 중 가장 많은 홀드를 가지고 있다.] 이 해 모기업 [[현대전자]]의 부도로 인해 구단 재정상황 역시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정민태의 [[임대료]] 5억엔+조웅천, 조규제의 트레이드 머니 15억원을 털어서 구단을 운영했다.[* 그 와중에 모기업인 [[현대전자]]가 [[SK하이닉스|하이닉스]]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, 유니콘스가 연고 침해 명목으로 [[SK 와이번스]]에게서 받은, 그리고 자신들의 서울 연고 입성을 위해 [[LG 트윈스]]와 [[두산 베어스]]에 줘야 할 54억을 '''멋대로 가로채갔다.''' 이후 하이닉스는 구단 지분을 무려 76%나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운영비 한 푼도 대주지 않고 구단을 사실상 방치하다시피 한다.][* 그 와중에 같은 [[범현대가]]인 [[정몽구]]의 [[현대자동차그룹]]이 현대 유니콘스 인수를 제시했지만, 하이닉스 측이 인수대금으로 무려 '''900억'''을 부르는 바람에 결국 인수를 포기했고, 현대차그룹은 대신 값싸게 나온 [[해태 타이거즈]]를 인수해 [[KIA 타이거즈]]로 프로야구에 입성한다. 하이닉스는 왕자의 난이 덜 끝난 상황에서 야구단을 현대자동차그룹에게 넘기고 싶지 않아서 저렇게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른 것이긴 하지만...] 투수조의 선발진은 임선동이 에이스로 분전했지만, 13승과 4점대의 방어율을 찍어 에이스라 보기엔 모자랐다.[* 최하위 [[롯데 자이언츠|롯데]]의 [[손민한]]과 역시 6위에 그친 [[LG 트윈스]]의 [[신윤호(1975)|신윤호]]가 공동 다승왕을 하였기 때문에 방어율 4점대 였는데 상위권 팀인 현대의 에이스가 방어율 4점을 찍었다는건 역시 많은 전문가들이 봤을때도 문제가 제기되었다.] 특히 정민태의 공백이 너무나 컸고, 3년차 막내였던 김수경은 엄청나게 부진했다.[* 그 뒤로 김수경은 15승 이상의 문턱은 커녕 아슬하게 아슬하게 서너번의 10승대 반열에는 오른다. 임선동도 이 시즌을 기준으로 완전히 폭망하고 10승 문턱에는 밟지 못한다. 이들의 전성기와 쇠퇴를 만든 주역이 바로 [[김시진]] 되시겠다.] 그 외에도 마무리 [[위재영]]의 부상[* 위재영은 원래 99년도 까지는 선발투수 2000년도 부터 마무리 투수로 옮겼으나, 마무리 라는 중책의 위압갑이 컸는지 이듬해 선발투수로 다시 복귀 했지만, 더이상의 가망성은 없고, 이후 추락하듯이 1군과 2군을 반복하였다.] 그나마 뒤에 있던 [[전준호(1975)|투준호]]와 [[마일영]]이 역시 선발과 중간계투로 뛰면서 지탱해 줬지만, 뭔가 2% 부족했었다. 그리고, 타선은 [[박재홍(야구)|박재홍]]과 [[박종호(1973)|박종호]]의 부진이 컸으며[* 타율이 2할 4푼으로 '''1할'''씩이나 추락하는 등의 악재이며, 전년도 타격 1위가 규정타석 최하위로 추락한 것은 한미일 야구 사상 최초의 사례다. 박재홍은 이 후 3할은 쳤어도 장타력이 급감해버리며 다시는 20홈런을 칠 수 없게 되었다.] 그나마 다른 타자들인 [[박경완]][* 포수가 [[20-20 클럽]]을 한 것은 동아시아 야구는 최초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단 [[이반 로드리게스|한번 밖에]] 없다. 그걸 이룬 박경완은 사실 전년도 포수 최초 40홈런을 치고 MVP를 했는데 이듬해 20-20 클럽 가입한다고 인터뷰를 하다가 시상식에 있던 기자들 및 KBO 관계자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는데 [[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|그걸 진짜로 했다]].] [[박진만]], [[이숭용]]은 제몫을 했고 전준호는 부상으로 복귀하여 1번타자로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. 시즌은 정규리그 2위로 마감했지만, 그 해 두산에게 밀려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.[* 3위 두산이 [[2001년 한국시리즈|한국시리즈]]로 올라가며 최종순위는 3위로 내려갔다.] 하지만 이 시기에 [[현대 유니콘스/2군|2군]]의 무명 투수 [[송신영]]이 발굴된 것과 셋업과 마무리를 오가던 [[신철인]]의 활약이 큰 소득이었다. 시즌 끝나고 [[김인호(야구)|김인호]]와 [[이명수(1966)|이명수]]가 현역에서 은퇴했으며, 백업포수인 [[이재주]]가 [[KIA 타이거즈]]로 현금 트레이드되었다. 외인 선수로는 [[톰 퀸란]][* 은퇴를 선언 했는데 다음년도에 [[LG 트윈스]]가 데려간다.]과 J.R 필립스[* 필립스는 빅리그에서 백업으로 좀 뛰던 선수였다.]과 케니 테일러가 당 시즌 활동하였고, 모두 평균 성적을 거뒀으나 전원 모두 재계약 포기를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